지강헌 사건 정리(유전무죄 무전유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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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 사건 정리(유전무죄 무전유죄 뜻)

by .,..,. 2020. 6. 15.

지강헌 사건 (有錢無罪 無錢有罪)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지강헌 사건"이 방송을 통해 재조명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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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 뜻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돈이 있을 경우 무죄로 풀려나지만 돈이 없을 경우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말이다. 법률소비자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가량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한다고 하였다/ 1982년 초판 발행된 '허쉬 허쉬'18페이지에서 사용되었다. (세상에 죄가 있다면 '돈 없는 죄' 밖에 없는 겁니다. 곧, 무전이 유전인 셈이지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의 절규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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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방송된 SBS 파일럿 프로그램인 ‘스페셜-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지난 1988년 TV 생중계 인질극으로 화제가 됐던 ‘지강헌 사건’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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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질극 현장은 사실 30초짜리 티저 영상에 불과하다"며 "그 뒤에는 32년간 밝혀지지 않은 어마어마한 본편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지강헌 사건은 1988년 10월 8일부터 10월16일에 걸쳐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던 25명 중 12명의 미결수들이 호송 도중 교도관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권총을 빼앗아 집단 탈주한 사건이다.

탈주범들은 이곳저곳 흩어졌고 이 중 지강헌 일당은 가정집에 숨어들어 인질극을 펼쳤다. 특히 지강헌 일당의 인질극이 TV로 생중계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날 방송에서 이야기꾼 역할로 등장한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은 각각 자신의 친구들을 초대해 사건의 전말을 전했다. 프로그램에서 장도연은 개그맨 김여운을, 장성규는 아나운서 김기혁을, 장항준은 개그우먼 송은이를 초대했다.

 

세 사람은 1988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10월 2일 올림픽 폐막식 이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TV에 생중계 됐다고 회상했다. 장도연은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무심하게 TV를 튼 사람은 ‘이게 영화가 아니라고?’하며 TV를 보게 됐다”고 이야지를 시작했다. 장성규는 “북가좌동에서 인질극이 생중계됐다. 권총을 든 남자와 겁에 질린 여자가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장항준은 “남자가 총을 쐈다. 그리고 인질범이 경찰에 요구한 게 있다.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달라는 것”이라며 지강헌의 실명을 언급했다.

이후 이야기는 탈주 당일인 1988년 10월 8일로 돌아간다. 방송에 따르면 토요일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던 죄수 호송버스에 미결수 25명이 타고 있었다. 안성 부근을 지날 무렵 재소자 한 명이 교도관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고 교도관은 죄수에게 소변통을 건넸다. 그 순간에 재소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난투극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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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되지 않아 죄수들에게 점령당한 호송 차량에서 죄수들은 교도관들과 옷을 바꿔 입었다. 이들 중 13명은 도주를 하지 않았고 12명은 카드를 찢어버리고 권총과 실탄을 챙겨 탈주했다.

이 중에 2명은 당일 검거 됐고 3명은 룸살롱에 놀러 갔다가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룸살롱 주인은 600만원의 현상금을 받았다. 남은 7명은 서울시 곳곳의 가정집에 들어가 머물기를 반복한 이른바 ‘인질 숙박’을 선택했다. 이들이 가정집을 선택한 이유는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지강헌 사건

인질 숙박을 선택한 이들은 지강헌과 인광술, 한희철, 강XX씨 등이었다. 당시 지강헌의 나이는 35세였고 나머지는 모두 20대초반이였다.

 

일당은 백주대낮 대학병원의 주차장에 침입해 제약회사 영업사원을 인질 삼았다. 그리곤 그의 집으로 향했다. 당시 35세였던 인질은 그날의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들이 내게 가다 와 칼을 겨누는 순간 느껴졌다. 이 친구들이구나”라고 말했다. 이 인질은 가족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탈주범들과 2박3일 동안의 계약 동거를 선택했다. 제약회사 직원이었던 인질은 "수면제"를 떠올리며 인질범들에게 먹일 생각도 했다고 했지만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와 달랐다고 했다. 인질은 탈주점과 함께 당일 저녁 술을 마셨다. 최초 국산 럼주 캡틴 큐를 마신 이들은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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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없는 집에 자라 물건을 훔치게 된 이야기, 전과자란 이유로 이발소에서 쫓겨난 이야기, 꿈이 시인이었다는 것 등 삶의 애환을 인질들에게 말했다고 했다.

실제 지강헌은 스스로에 대해 “난 대한민국 최후의 시인이다.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낭만적인 염세주의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탈주 이유에 대해 지강헌은 “대한민국 비리에 대해 모두 파헤치고 죽겠다”고 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으로 향하려 했다고도 했다.

지강헌의 죄목은 7차례 걸쳐 현금, 승용차 등 약 556만 원을 절도한 것이었으며 그가 받은 형량은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전두환 정부 당시 만들어진 보호감호제는 재범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징역 후 감호소에서 머물게 하는 것으로 실제 징역과 다를 게 없는 제도였다. 지강헌의 경우 17년형이 된 셈이다.

반면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씨는 막강한 권력으로 몇백억 원의 횡력을 저질렀지만 재판부에서 인정한 횡령금은 76억원에 그쳤고 그가 받은 처벌은 징역 7년이었다. 그마저도 3년 정도 살다 석방됐다. 이때 나온 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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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을 호소했던 지강헌은 전두환에 대한 복수심으로 연희궁을 향하려다 경비가 삼엄해 그만뒀다고 했다.

지강헌과 일당은 네 번째 집으로 향했다. 당시 TV에서 탈주범들의 뉴스를 보고 있던 22세 여대생은 방 안에 들어온 탈주범들을 목격하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흔이 넘은 아버지가 “밥은 먹었냐. 밥부터 차려라”라고 하면서 긴장감이 다소 완화됐다고 한다. 어머니는 고추장찌개와 이것저것을 준비했고 이들은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마음이 누그러진 탈주범들은 집주인이 신발을 벗으라는 말에 순순히 신발도 벗고 바닥을 닦으라고 걸레까지 건넸다고 한다. 안정을 찾은 이들은 여대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죽는 게 제일 멋있어 보이냐. 옥상에 떨어지는 게 멋있냐. 총에 맞아 죽는 게 멋있냐”고 했고 여대생은 “멋있어 보이는 죽음이 어디 있느냐”고 답했다.

여대생은 탈주범들이 순순히 나가게 할 방법을 생각하다 성경책을 읽어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때 지강헌이 “나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어떤 기도냐는 여대생의 질문에 “내가 마지막 순간 예수님 마음이 되게 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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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의 기도에 지강헌은 펑펑 울었다고 회상했다. 이곳에서 1박2일을 머문 지강헌 일당은 북가좌동으로 이동했다.

북가좌동에서 집주인의 신고로 테러 특공대들과 대치한 지강헌 일당은 인질범에게 총을 겨누면서도 “미안하다. 정말 이럴 생각이 없다. 절대 다치지 않게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사과했다. 지강헌은 경찰에 승합차를 대기하면 인질들을 풀어주겠다고 했고 차가 준비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당 중 가장 어린 강씨가 인질을 붙잡고 밖으로 나와 차가 없는 것으로 확인하고 돌아오려던 찰나 지강헌은 강씨를 향해 총을 쐈다.

 

지강헌은 강씨에게 “내가 너 살린다. 조용하고 내 말 들어. 내 의견 받아들여라”라며 달랬다. 그 순간 집 안에선 두 발의 총성이 들렸다. 안광술과 한희철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홀로 남은 지강헌은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들려달라고 했고 그 순간 유리를 집어 들고 자살을 시도했다. 이때 경찰 특공대가 들이닥쳐 지강헌을 저격했다. 2발을 총을 맞고 쓰러진 지강헌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4시간 뒤 숨졌다. 집 밖으로 나간 덕분에 홀로 살아남은 강씨는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 강씨는 선거 공판에서 징역 14년이 구형됐지만 7년으로 감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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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인질들이 그를 위해 써준 탄원서 때문이다. 인질들은 탄원서엔 “평범하고 단란한 우리 가정에 그날은 잊을 수 없다. 처음에는 모두 겁을 먹었지만 이들의 행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러워졌다. 이들에게서 나쁜 냄새가 아닌 인간다운 눈빛을 읽었고 후회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어 “아침밥을 먹은 이들은 ‘잘 먹었습니다 아주머니. 신세 많이 졌다’라는 말도 남겼다. 그리고 자기들이 떠나면 곧 신고를 하라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이들이 가고 난 후 우리 네 식구 모두 울었다.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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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는 미웠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었다. 부디 이 탄원서를 읽으시고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셔서 희망의 빛을 벗 삼아 세상의 좋은 등대지기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는 염원도 담겼다. 송은이는 탄원서를 본 뒤 “왜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다섯번의 인질극에도 희생자가 없었던 지강헌 사건에 대해 장항준은 “이들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면 어땠을까. 이들의 일생이 가련하다”고 했다. 해외 유명 경제지에 지강헌 사건을 통해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한국에서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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